세상에 굴하지 않음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
십이사도 정원회
크리스틴 엠 옥스 자매
CES 청년 성인을 위한 노변의 모임 • 2007년 11월 4일 • 포카텔로 종교 교육원
옥스 자매와 저는 오늘 저녁 이곳 아이다호 주 포카텔로에 위치한 종교 교육원에서 전 세계로 방송되는 말씀을 전하게 되어 매우 기쁩니다. 오늘 이 자리에 포카텔로 지역의 청년들이 얼마나 많이 모였는지를 전 세계의 청중들에게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대략 10,000명이 모여 있고 그 중에서 약 7,000명은 아이다호 주립 대학교의 학생들이며, 아서 베이라스 총장님도 부인과 함께 자리하셨습니다. 아이다호 주립 대학교에 등록한 총 학생 수는 약 14,000명인데, 그 중 후기 성도 학생이 거의 절반을 차지합니다. 훌륭한 후기 성도 공동체가 있는 아이다호 남동부 지역에서 오늘 이 교회 교육 기구 방송을 할 수 있는 것을 큰 축복으로 여깁니다.
데이트와 어울려 노는 것의 차이
저는 2005년 5월에 교회 교육 기구 노변의 모임에서 데이트와 어울려 노는 것의 차이점을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 말씀이 있은 후 그에 대한 여러 반향이 있었기에, 오늘 밤에 말씀드릴 주제에 앞서 잠시 그 부분에 대해 언급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차이를 듣지 못했던 분들을 위해서, 그리고 들었던 분들이 다시 기억할 수 있도록 이전의 말씀을 요약해서 전해드리겠습니다.
첫째, 저는 많은 20대 청년들이 결혼과 가족 생활의 책임을 미루려는 경향에 대해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우려를 표했습니다.
둘째, 저는 대학교 캠퍼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청년들 사이에서 데이트가 거의 사라졌다고 말하는 분들의 의견을 전했었습니다. 데이트는 소위 “어울려 노는 것”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저는 어울려 노는 것과 데이트의 차이를 모르는 분들을 위해 이 두 개념을 정의했었습니다. 그 말씀을 한 후에 저는 이곳 아이다호 주의 한 여성분이 보낸 것으로 생각되는 편지 한 통을 받았었는데, 그녀는 어울려 노는 것에 대해 “떼지어 빈둥거림”이라는 참신한 정의를 내렸습니다.
셋째, 저는 데이트가 왜 어렵고 흥미 없는 일이 되어버렸는지 말씀드렸습니다.
그런 뒤에 다음과 같은 충고를 드렸습니다. 그때의 말씀을 인용하겠습니다.
“만일 남성 여러분이 선교 사업을 마치고 돌아와서 아직도 여러분이 16세 때 따르라고 조언 받은 청소년의 모범을 따르고 있다면, 이제 여러분은 성장하고, 용기를 내어서 여러분과 짝이 될 누군가를 찾을 때입니다. 여러 젊은 여성들과 함께 다양한 데이트를 시작하십시오. 그 단계에서 좋은 결실이 맺어진다면, 구혼 단계로 진행하십시오. 지금은 결혼할 때입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그분의 독신 아들과 딸들을 위해 계획하신 것입니다. 남성들이 먼저 시작하고, 그런 다음 계속 진행하십시오. 여러분이 데이트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아마도 이 정의가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저는 이 정의를 열여덟 살인 제 손녀로부터 들었습니다. ‘데이트’는 (1) 미리 계획하기 (2) 대가 지불하기, (3) 짝 이루기, 이 세 가지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성 여러분, 너무 많이 어울려 놀지 마시고, 간단하고 저렴하며 자주 할 수 있는 데이트를 하십시오. 여러분 여성들이 음식을 마련하여 모인 곳에서 청년들이 쉽게 어울릴 수 있게 하지 마십시오. 무료로 음식을 밝히는 청년들에게는 음식을 주지 마십시오. 가끔 단체 활동을 하는 것은 괜찮지만 이성과 함께 있을 때 어울려 노는 것을 주된 일로 삼는 남성들을 본다면, 저는 여러분이 음식을 보관하는 방을 걸어 잠그고 현관에 빗장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한다면, 여러분은 또한 ‘개인적인 데이트’ 또는 그와 같은 활동이라면 문이 열릴 것임이라는 표지판을 걸어 놓아야 합니다. 젊은 남성들이 데이트를 더 자주 신청하게 하려면, 데이트 하는 것이 지속적인 서약을 암시하는 것이 아님을 서로 기대해야 합니다..…
“독신 친구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이 이성과의 교제를 축구나 간이 미식 축구 같이 팀 스포츠로만 진전될 수 있는 어울려 다니기 형태가 아닌, 결혼으로 발전해 갈 가망성이 있는 데이트로 방향을 바꾸기를 조언합니다. 결혼은 적어도 상당수의 자녀들이 생기기 전까지는 단체간 활동이 아닙니다. (“일생의 헌신”, [청년 성인을 위한 CES 노변의 모임, 2005년 5월 1일], 5~6쪽)
이것이 2년 반 전에 제가 드렸던 말씀입니다.
그 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저는 주로 여성들에게서 몇 통의 감사 편지를 받았습니다. 많은 분들이 “장로님의 말씀이 맞아요.”라고 말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일반적으로 한 가지 면만 놓고 보더라도 소위 실망스런 데이트 상황”이 있다고 확인해 주었습니다. 몇몇 남성들은 여성들이 자신들의 데이트 신청을 거절했다거나, 가족을 이루는 책임에 적극적이지 않은 쪽은 여성들이라며 불만을 토로했습니다.
한 편지에는 “교회의 많은 젊은 독신 성인들이 ‘어울려 노는’ 문화 때문에 좌절합니다. … 그리고 자신들의 힘으로는 전체적인 흐름을 바꾸기에는 역부족이라고 느낍니다.”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이 여성은 우리 각자에게는 “행동으로 옮겨야 할 개인적인 책임”이 있다고 제가 말한 것에 대해 감사해 하며 “어울려 노는 것을 지양하고 대신에 데이트 문화를 지향”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고 덧붙였습니다. 그것의 예로, 제가 좋아하는 또 다른 편지 중 하나에는 그 여성의 아파트 문에 걸려있는 표지판 사진이 있었습니다. 그 표지판에는 “개인적인 데이트 신청을 위해서라면 문이 열릴 것임”이라고 씌어있었습니다.
또 다른 여성은 자신의 여동생이 어울려 놀다가 만난 한 남성과 결혼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데이트를 많이 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타인과 격의 없이 교제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이 두 사람은 각자 계속해서 동성 친구들하고만 어울렸기 때문에 결혼 생활에 문제가 생기게 되었습니다.
시간 관계상 이러한 편지들을 더 언급할 수는 없지만 하나만 더 전해드리겠습니다. 왜냐하면 이 편지는 여러 경험들을 전형적으로 대변하기 때문입니다. 이 편지는 제가 말씀을 한 지 약 1년 후에 도착했습니다. 이 편지는 한 부부가 자신들의 행복한 결혼생활에 대해 제게 감사를 표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들은 둘 다 대학원생이었고 독신 와드에서 친구였다고 합니다. 그 형제는 그 자매에게 그냥 즐거운 시간을 갖기 위해 데이트하면서 서로에 대해 더 알아보기를 원하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 자매는 며칠간 이것에 대해 고민한 후, 형제에게 관심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몇 달이 지난 후, 노변의 모임에서 제가 했던 말씀은 자극제 역할을 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썼습니다. “노변의 모임에서 장로님은 ‘데이트를 쉽게 하기 위해서는 데이트가 아주 진지한 것임을 암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젊은 남성들이 데이트를 더 자주 신청하게 하려면, 데이트 하는 것이 지속적인 서약을 암시하는 것이 아님을 서로 기대해야 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편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습니다. “그 노변의 모임 직후, [그녀는] [그에게] 다가가 잠시 이야기할 수 있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데이트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았고 여전히 관심이 있다면 데이트에 응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저희는 여전히 서로에 대해 배워야 하는 것들이 많았고, 많은 것들을 바꾸어야 했습니다. 저희는 이듬해 5월에 워싱턴 디시 성전에서 결혼했습니다. 장로님의 직접적이고 분명한 충고 때문에 저희는 데이트가 서로를 더 잘 알게 하는 기회이지, 장기간의 관계를 맺거나 결혼을 해야 하는 즉각적인 서약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맞습니다!
제가 말씀 드렸다시피 “간단한 데이트를 더 자주함으로써 여성과 남성 모두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미래의 배우자 후보들을 광범위하게 평가할 수 있습니다. 전통적인 데이트 방식은 상대를 알아가는 훌륭한 방법이었습니다. 그것은 대화를 장려하고, 일대일 상황에서 서로를 대하는 방법을 알 수 있었습니다. 또 성숙한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방법을 배우는 기회였습니다. 어울려 노는 것에서는 이런 것들을 전혀 배울 수 없습니다.” (일생의 헌신, 5쪽)
이제 오늘 이 모임에서 저의 데이트 상대자인 아내 크리스틴을 소개합니다.
크리스틴 엠 옥스 자매
옥스 장로님이 저를 여전히 데이트 상대자로 생각해 주셔서 기쁩니다. 여성들은 젊음이 영원하길 바랍니다. 남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는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그리고 이 교회의 고귀하고 위대한 세대와 함께 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우리의 미래이자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여러 기쁨과 훌륭한 일들이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희는 독신 시기가 교육과 결혼, 가족과 종교를 위해 헌신할 것인가에 대해 결정하는 독특한 도전의 기회라는 것을 압니다. 저는 오늘 밤 다음의 네 가지 사항에 대해 말씀드릴 것입니다. (1) 가정과 가족을 강화하는 능력, (2) 서로를 돕고 고양시키는 능력, (3) 와드에서 독신으로 지내는 시간, (4) 데이트 상대자 결정하기.
첫째, 주님은 여러분의 영원한 가족이 승영하는 데 여러분이 도움을 줄 수 있기를 바라십니다. 이 주제에 대해 메리 엔 쿡 자매님이 2007년 10월 연차 대회에서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상적인 가족에서부터 가장 문제가 많은 가족에 이르기까지 모든 가족들은 강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여러분을 통해 가족은 강화될 수 있습니다.”(“가정과 가족을 강화함”, 리아호나, 2007년 11월호, 11쪽)
저는 그분의 말씀이 사실이라는 것을 간증드립니다. 여러분의 힘, 열정, 모범은 가족에게 큰 영향을 미칩니다. 비록 그것이 편지나 전화를 통해 온다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제 가족 중 청년 독신 연령대의 자녀들은 [저희 가족에게] 기쁨을 주며,, 그들의 헌신과 유머 감각, 신앙은 저희 가족을 결속시키는 접착제 역할을 합니다. 쿡 자매님은 “여러분의 의로운 삶의 모범은 가족을 강화시킬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리아호나, 2007년 11월호, 11쪽) 여러분은 중요하며, 변화를 일으킬 수 있습니다.
둘째, 서로에게 친절하십시오. 우리에게는 서로 격려하는 친절한 말이 필요합니다. 여러분은 그런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그런 말을 사용해보십시오. 그것이 여러분에게 영원한 축복이 될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그런 말 하기를 주저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하는 말은 오랫동안 기억될 것입니다. 옥스 장로님은 한 청녀에게 전한 칭찬을 자신의 고등학교 졸업 기념 앨범에 적었는데, 후에 그녀는 교회 본부 보조 조직 회장이 되었습니다. 50년이 지난 후, 그 자매님은 그 칭찬의 말을 자신의 자서전에서 인용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고양될 필요가 있습니다. 자매 여러분, 여러분 주위에는 멋지고도 의로운 형제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난 주에 은행에 갔을 때 두 명의 훌륭한 신권 소유자들을 만나면서 이 같은 사실을 상기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전하는 격려의 말과 다른 사람들에게서, 특히 여러분 주위의 형제들에게서 잠재력과 선함을 볼 수 있는 비전은 여러분에게 큰 유익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칭찬 받고 존중 받을 때 성장하고 발전합니다. 친절하고 진실된 말은 여러분 자신과 상대방에게 선물이 되고, 여러분의 결혼 생활까지 이어질 것입니다.
셋째, 여러분 중 많은 분들은 독신 와드에 속해 있습니다. 독신들을 위해 따로 분리된 교회는 없습니다. 독신들을 위한 와드나 지부 혹은 공과가 있을 수는 있지만 우리 모두는 같은 교회에 속해 있습니다. 독신 와드에 참석하면 활동, 파티, 봉사 활동, 영적인 인도 등 많은 기쁨을 누릴 것입니다. 관심사가 비슷한 또래의 친구들을 새로 사귀는 기회가 생깁니다. 하지만, 아주 짧은 시간에 미래의 동반자를 찾아야 하는 이런 환경에서 일부 독신들은 미래의 동반자를 찾는 데만 모든 열정을 쏟아 붓습니다. 독신이라는 이 독특한 시기에 비슷한 상황에 처한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즐겁게 보내는 대신, 이들은 결혼을 하지 못할까 봐 조바심을 냅니다. 그들은 자신이 독신이라는 사실에 더 좌절하고 염려합니다.
여러분은 주름살도 없고, 마음대로 시간을 사용하고, 선택과 기회가 넘쳐나는 세상에서 절정의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의미 있는 결정을 내리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때때로 그런 결정을 내리는 것이 매우 어려워 보이기도 합니다. 왜 그렇게 어려울까요?
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님은 선교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의 충고는 하나님을 알고 섬기기 위해 분투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됩니다. 홀런드 장로님은 많은 선교사들이 희박하게 보이는 성공 가능성과 선교 사업의 가치에 대한 회의로 좌절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교사들은 이렇게 질문했습니다. “왜 이 일이 힘들까요? 왜 더 나아지지 않을까요? 왜 더 빨리 성공을 거둘 수 없을까요? 왜 더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오지 않을까요? 이것은 진리인데 말입니다. … 우리는 기적을 믿고 있는데도 말이지요. 왜 사람들이 앞다투어 [교회로 몰려오지] 않죠? … 왜 더 쉽게 하지는 못할까요?”
홀런드 장로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이것에 대해 많이 생각해 보면서 내린 제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교회의 교리는 아닙니다. 저는 구원이 값싼 경험이 아니기 때문에 선교 사업이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대학 생활이나 현세의 경험도 값싼 것이 아니기 때문에 쉬운 것이 아니라고 덧붙여 말씀드립니다.) “구원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이것은 진리이며 그분은 위대하고 영원하신 분으로서 우리를 이끄십니다. 그분에게도 쉽지 않았던 일이 우리에게 쉬울 거라고 어떻게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속죄에 대해 진정으로 알거나 느끼지 못했다면 어떻게 속죄에 대해 지속적이고 감동적인 간증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회원과] 선교사로서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으며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제 말에 집중해 주십시오. 그 말은 [우리가] 그분이 걸으셨던 길을 걷고, 그분이 느끼셨던 고통을 느끼고, 적어도 그분이 흘리셨던 슬픔의 눈물을 흘려 보도록 준비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속죄, [신임 선교부 회장 세미나에서 하신 말씀, 2007년 6월 26일], 8쪽)
구원은 값싼 경험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 그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시련으로도 여러분의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충실함이 약해지지 않게 하십시오. 모욕이나 역경 때문에 성찬을 취하지 않거나 영적인 약화나 영적인 죽음에 이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것을 굳게 지키고 기억하십시오.
넷째, 데이트할 상대자를 결정하십시오. 옥스 장로님과 저는 이 교회에서 독신으로 지내는 것이 어떤 것이지 누구보다 잘 압니다. 옥스 장로님은 2년간 독신이셨고, 저는 50년 이상 독신이었습니다. (세계 기록이지 않습니까?) 저희는 외로움이 어떤 것인지, 밤에 베개를 눈물로 적시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압니다.
저희는 최근에 같은 질문을 여러 차례 받았습니다. 주로 이런 질문이었습니다. “데이트 할 사람이 없어요. 어떻게 해야 하죠?” 한 독신 자매님은 결혼을 기다리는데 지쳤다고 절친한 친구에게 털어놓았습니다. 그녀는 혼자라는 것,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것, 모든 결정을 혼자서 내리는 것, 꿈이 실현되기를 기다리는 것에 지쳤습니다. 기다림은 그녀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모든 올바른 것들을 원했습니다. 아내가 되고, 어머니가 되고, 가족이 있기를 원했지만 그 자매님에게 돌아온 것은 절망이었습니다. 결국 그 자매님은 잘못된 방식을 추구했습니다. 그녀는 자신과 가치가 다른 남자를 찾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자매 여러분, 이것은 아무 남자와도 결혼을 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뒤늦게야 그녀는 자신의 가치를 타협함으로써 엄청난 슬픔과 자기 혐오, 좌절을 일으켰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녀는 주님을 믿는 가운데 기다리는 것이 개인의 화평과 행복을 위해서 훨씬 가치 있는 것임을 너무 늦게 깨달았던 것입니다.
“데이트할 사람이 없어요. 어떻게 해야 하죠?”라는 질문에 대해 오늘밤 여러분 스스로 답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과 미래의 동반자와 가족을 위해 무엇을 바라십니까? 우리는 위대한 경륜의 시대에 살고 있으며 왜 그것이 굉장한 것인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성취하고자 하는지를 스스로 알아야 합니다. 오늘밤 저는 여러분에게 미래의 여러분과 여러분이 소망하는 가족과 자녀들에게 보내는, 여러분만 읽게 될 편지를 써보라고 청하겠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있는 질문에 답해주고 소망을 나누는 편지 말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어떤 사람을 찾고 있는지를 알게 되면 여러분은 찾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미래의 가족들이 그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삶에 깊이 관여하시며, 그들을 지켜봐 주실 하나님 아버지를 알기를 바라십니까?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실 아버지, 모든 호흡을 살피시고 머리털까지도 셀 수 있는 아버지, 아침에 나가고 밤에 돌아올 때, 옳고 그른 것을 결정할 때 지켜보시는 아버지를 알기를 바라십니까?
여러분은 언제나 충실하고 진실되며, 삶이 힘들 때도 여러분 곁에 있겠다고 하나님 아버지와 영원한 성약을 맺는 배우자를 원하십니까? 저는 “만약 독신으로서 겪게 되는 어려움을 견디지 못한다면 결혼 생활의 압박을 견디지 못할 것입니다” 라는 축복의 말씀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이것이 사실임을 간증합니다. 주님은 여러분을 강화시키고 고양시켜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미래의 배우자와 자녀들이 구주이자 구속주인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 바라십니까? 그분은 “온갖 고통과 고난과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의 고통과 질병[과 낙담과 슬픔]을 짊어지리라는 말씀을 이루려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앨마서 7:11) 여러분은 이것을 알기 원하십니까? 아니면 홀로 서기를 원하십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족이 조셉 스미스와 몰몬경에 대한 간증으로 하나가 되고 이 간증이 여러분의 가족에 가져올 위대한 힘을 느끼길 바라십니까? 여러분은 자신이 지상에 있는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에 속해 있으며 영생과 행복의 축복을 온전히 받을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고든 비 힝클리 회장님을 사랑하며 하나님이 택하신 지상의 선지자로 지지하십니까?
오늘밤, 또는 편한 시간에 여러분 자신에게 편지를 쓰십시오. 미래의 사랑하는 배우자와 자녀들에게 편지를 쓰고 그들에게 어떤 결혼 생활을 원하는지 알려주십시오. 또한 여러분의 표준과 복장, 데이트하는 법, 애정이 깃든 친절함에 대해서도 쓰십시오. 이렇게 할 때 여러분의 모든 질문에 스스로 해답을 찾게 될 것입니다. 그 힘은 여러분에게 내재되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답을 알고 있으며, 영원히 행복하고 평온하며 안전하기를 바랍니다. 대답은 여러분 안에 있습니다.
여러분을 참으로 사랑합니다. 저는 제가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회원인 것에 매우 감사합니다. 참된 이 교회는 우리에게 이 어두운 세상에서 안전한 등대가 되어준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세상에 굴하지 않음
고마습니다, 크리스틴. 저의 준비된 말씀을 하기 전에 세계 기록 보유자와 결혼한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제, 오늘의 주제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젊은이들에게 도전의 시기입니다. 매일 우리는 지구 온난화, 전쟁과 전쟁의 소문, 가뭄, 일부 전염병의 확산 가능성, 경기 침체 가능성 등과 같은 큰 걱정거리를 안고 있습니다. 해변가에 위치한 도시는 해수면이 상승하면 조류가 그들 집 앞이나 대문 앞까지 밀려들어올 것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모든 것들만큼이나 심각한, 우리 주변 세계에서 점차 증가하는 악의 세력이 더 걱정됩니다.
저는 이 모든 어려움들이 리하이의 예언적인 가르침의 성취라고 봅니다. “모든 것에 반대되는 것” (니파이후서 2:11)이 있어야 합니다. 이 모든 도전들 가운데에서도 우리는 주님의 위대한 약속을 신뢰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명하시는 것을 이룰 수 있도록 길을 예비하시지 않고서는 아무 명령도 주지 아니하신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니파이전서 3:7 참조) 주님은 고난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우리의 기도를 즉시 들어주지 않으실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지워진 짐을 감당할 힘을 주시겠다고(모사이야서24:14~15) 하셨으며, “너희가 준비되어 있으면, 두려워하지 않게 되리라”(교리와 성약 38:30)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문학, 음악, 오락, 영화, 비디오, 인터넷, 학교, 시장 등에서 악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우리는 불가피하게 우리 자신과 가족들을 공격하는 악의 세력을 바꿀 수는 없지만 그에 대항하는 힘을 기를 수는 있습니다. 우리는 안전 지대를 만들고 우리를 에워싸는 세력들을 막을 방벽을 튼튼하게 해야 합니다. 간단히 말하자면, 우리는 세상에 굴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 굴하지 않는다는 개념은 우리가 혁명을 지지하거나 이웃과 멀어지거나, 우리가 상대해야 하는 사람들을 불쾌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이 개념은 단지 우리의 한정된 시간과 영향력 하에서 우리의 입장을 취하고, 그것을 알리며, 그것이 적어도 우리에게 장점이 된다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납득시키려고 노력해야 함을 말합니다.
굴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예를 들어 설명하기 위해 한번도 공개적으로 나눈 적이 없는 제 경험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것은 50년 전의 일입니다. 저는 유타 방위군의 병장이었으며 스물한 살의 나이에 장교, 즉 포병 소위가 되는 데 필요한 모든 교육을 다 받았습니다. 하나만 빼고 말입니다. 저는 신체 검사를 통과해야 했습니다.
저는 군 의료 기관에 보고를 했습니다. 신체 검사는 저와 같은 예비역 군인들이 했는데, 아마도 그 때문에 그 일이 발생한 것 같습니다. 한 상병이 제게 색맹 검사를 했습니다. 그는 서로 다른 색깔의 점들이 열두 쪽 정도에 빼곡히 채워져 있는 책을 보여주며 각 페이지의 점들 속에서 어떤 숫자가 보이느냐고 물었습니다. 제가 검사를 끝낸 뒤, 그는 검사 책을 덮으며 단호한 어조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병장님은 색맹이시기 때문에 절대로 장교가 되실 수 없습니다.”
저는 놀랐습니다. 제가 정말 색맹이라면, 그때가 그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실망감과 약간의 모욕감을 느끼면서 저는 병장인 제가 장교가 되기 위한 신체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더라도 저보다 지위가 낮은 상병이 저를 불합격시키게 하지는 않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저는 검사실 저편에서 자기 책상에 앉아 있던 군의관 대위를 발견했고, 그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저는 그 색맹 테스트의 결과에 굴하지 않고 강하게 주장했기 때문에 상병은 마지 못해 저를 그 대위에게 데리고 갔습니다.
군의관은 “뭐가 문제인가?”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설명을 하자 다행스럽게도 그는 상병의 손에 있던 색맹 검사 책을 받아 들고 직접 저에게 검사를 실시했습니다. 제가 그 책에서 보았던 모든 숫자를 다 말한 뒤에 그는 우리 둘에게 직접적으로 말했습니다. “병장, 자네는 통과했네. 상병, 자네가 색맹이네.”
그렇게 해서 저는 유타 주 방위군의 장교가 되었고, 그 이후로 다른 기회의 문이 열렸으며, 제 삶에서 몇 가지 중요한 경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굴하지 않아야 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분명히 위험한 시대에 살고 있으며 많은 원인들 때문에 근심이 쌓입니다. 그렇더라도 많은 스트레스가 있었던 전과 마찬가지로 이 시대에서도 젊은이들은 낙관적으로 전진하고 긴 인생을 생산적으로 살 수 있게 준비해야 합니다. 결혼하십시오. 자녀를 낳으십시오. 교육을 받고 신앙을 가지십시오.
리차드 지 스코트 장로님의 최근 저서인 Peace, Happiness, and Joy(평안과 행복, 기쁨을 찾음) 에는 “커져만 가는 악의 세력 속에서 잘 살아가는 법”이라는 제목의 장이 있습니다. 거기에 있는 말씀을 조금 인용하겠습니다.
“여러분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손을 쥐어 틀며 미래에 대한 걱정에 사로잡혀 있을 수도 있고 악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 주님의 권고를 따를 수도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어두운 면에 집중한다면, 어두운 면만 보게 될 것입니다. …”
“이제 밝은 면을 보십시오. 악의 조그만 부분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대체로 매우 아름답습니다. 선하고 진실된 사람들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살아갈 방법과 전세계적으로 퍼져가는 타락의 압력에 물들지 않을 방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2007년], 172~173쪽).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신앙, 즉 주님을 신뢰할 때 가능합니다. 그분의 계획을 믿으십시오. 그분의 약속된 축복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을 실족시키지 않을 그분의 지도자들을 믿으십시오.
안식일에 해야 할 일
우리가 신앙으로 전진하고 세상에 굴하지 않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는 안식일을 합당하고 적극적으로 지키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고, 세상의 노동에서 휴식을 취하는 이 날은 삶의 폭풍우 속에 설치된 일종의 신성한 닻과 같습니다. 안식일을 합당하게 지킨다면 우리와 우리 가족들은 유혹에 굳건히 맞서고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교리와 성약 59:9 참조) 하는 데 필요한 영적인 힘을 얻을 것입니다. 안식일을 합당하게 보낸다면 점점 거세지는 악의 폭풍우 속에서 우리 신앙의 빛과 희망이 밝아질 것입니다.
저는 대개 안식일에 관한 말씀이 그 날에 하지 말아야 할 것에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오늘 말씀의 대부분을 안식일에 해야 할 것에 할애할 것입니다.
우리는 “안식일을 준수하여 거룩하게 지켜야”(교리와 성약 68:29) 한다는 계명을 받았습니다. 안식일은 영과 육신의 활력을 위해 마련된 신성한 시간으로, 성찬을 취하고 의식을 준비하고 행하며 복음 교리와 원리를 배우고 가르치고 가족의 단합을 도모하며 봉사하고 합당한 사교를 즐기는 날입니다.
안식일에 대한 우리의 염려는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과 많이 다릅니다. 우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안식일을 성스럽고 중요한 날로 여기지 않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안식일은 점점 부, 쾌락, 개인의 편리를 추구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안식일은 사람들이 쇼핑을 가장 많이 하는 날입니다. 해변에 가고, 보트놀이를 하고, 여러 가지 오락을 즐기는 날이며, 스포츠나 구기 경기, 로데오 등을 하기에 최적의 날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안식일의 기원을 알고 있습니다. 6일 동안 주님은 지구와 그 안의 만물을 창조하셨고 일곱째 날에 쉬셨습니다. 주님은 안식일을 축복하시고 “거룩하게”(출애굽기 20:11) 하셨습니다. 주님은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아무 일도 하지 말”고 가족이나 고용인들도 일해서는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출애굽기 20:9~10) 우리는 그 날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야” 합니다. (출애굽기 20:8)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성약의 표징입니다. 주님은 선지자 에스겔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례(계명)를 주셨고(에스겔 20:11 참조) 또한 “나는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알게 하려 하여 내가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었노라”(에스겔 20:12)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에스겔 20:2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에스겔 20:20)
이 표징과 계명에는 목적이 있으며 그것을 지킬 때 오는 축복이 있습니다. 선지자 모세를 통해, 주님은 만약 이스라엘이 그분의 안식일과 계명을 지키면 그들의 땅이 비옥하고 안전하게 되도록 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레위기 26:2~6 참조) “내가 그 땅에 평화를 줄 것인즉”(레위기 26:6)이라고 주님은 약속하셨습니다.
현대에 다시 한 번, 주님은 안식일에 “[우리] 일을 쉬고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우리의] 헌신을 바치도록” 하셨고, 이 날에는 “다른 어떠한 일도 하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교리와 성약 59:10,13)
우리가 창조주의 계명을 지킬 때, 우리는 그분께서 약속하신 축복들을 받을 자격을 갖추게 됩니다. 우리를 창조하신 주님은 어떠한 행동이 우리의 육체적, 영적 성과를 최상으로 만드는지 알고 계십니다. 또 주님은 우리를 그런 행동으로 이끄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몇 년 전에 저는 새 차를 구입했습니다. 복잡한 원리로 튼튼하게 만들어진 그 차는 기술의 경이로움 그 자체였습니다. 물론 가장 효율적인 상태로 운행하기 위해서는 정기적인 주유와 정비가 필요했습니다. 이 같은 필요 사항을 운전자에게 알려주기 위해, 자동차 제조사는 운행 설명서를 주었습니다. 우리의 창조주께서도 우리의 영과 육체를 위해 똑같이 하셨습니다. 지혜의 말씀이 바로 그런 지침서입니다. 안식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창조주께서는 우리가 6일 동안 일하고 7일째에 휴식을 취할 때 신체적 활력과 영적인 성장이 가장 잘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몰몬 개척자 손수레 부대들은 이 계명을 따랐습니다. 여러 자료를 통해 우리는 그들이 6일 동안 여행하고 7일째 되는 날에 휴식을 취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몰몬 개척자들에게 일요일은 휴식의 날일뿐 아니라 영적으로 활력을 얻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안식일을 지킨 개척자들은 많은 유익을 얻었습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광야를 일주일에 6일을 여행한 사람들은 일주일에 7일을 여행한 사람들과 비슷하게 목적지에 도착했으며, 여행 중에 일어난 마모나 손상, 피로, 고장, 인명이나 가축의 손실 등은 훨씬 적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육체도 우리의 창조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영양소 없이는 발육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칼슘을 먹지 않는다고 해서 그 결과가 곧 바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필수 영양소를 섭취하지 못하면 우리 몸의 놀라운 기능은 조만간 무너지게 됩니다. 영생으로 향하는 여정 속에서 우리를 지탱해 주는 데 필요한 영적인 활력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필요한 영적인 영양분을 받는 삶을 살지 않으면 우리의 영은 발육을 멈추고 영생으로 향하는 우리의 여정은 중단될 것입니다.
우리의 복장 또한 예배하고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데서 오는 축복을 받기 위해 중요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우리는 교회 회원들, 특별히 청년들이 헌납된 건물에 예배하러 올 때 적절하지 못한 복장을 하며 품위를 크게 손상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예배 드리고 성찬을 취하러 올 때 합당한 옷차림을 해야 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이에게 [우리의] 헌신을 바치”(교리와 성약 59:10)기 위해 우리는 안식일에 자신의 소속 와드에 참석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회원 기록이 있고, 십일조를 내며 성전 추천서를 받는 와드에 참석하십시오. 다른 와드를 참석하는 것은 어쩌다 한번 있는 예외가 되어야 합니다. 청년들, 특히 형제님들은 교회 부름 없이 여러 와드를 옮겨 다니지 마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하고 있으며, 영원한 동반자를 찾는다는 명목으로 이것을 정당화합니다. 물론 교회의 젊은이들을 위한 적절한 사교 모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임들을 장려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합니다. 하지만 일요일 모임에 참석하는 여러분의 주된 동기가 사교 모임 때문이어서는 안 됩니다. 안식일은 성찬을 취하고 봉사하는 날이며, 주님의 보통 판사이자 성전 추천서 접견을 하는 여러분의 감독님과 관계를 유지하는 날입니다.
다음 주에 성전 결혼을 하고 싶다고 긴급히 감독님의 접견을 요청했던 어떤 젊은이와 같은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그 젊은이에게 감독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형제님은 누구시죠? 회원 기록도 있고 부모님이 누구인지도 알지만 선교 사업을 마친 이후로 형제님을 한번도 본적이 없군요. 십일조를 바친 기록도 없습니다. 저는 형제님이 주님의 부름도 받지 않고 지냈다는 것을 압니다. 저는 형제님에게 성전 추천서를 드릴 수 없습니다. 형제님의 와드로 돌아오십시오. 여기서 봉사하고 여기서 십일조를 내고, 여기서 형제님의 감독이 형제님의 영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십시오. 그런 후에 우리는 몇 달 뒤에 추천서 발급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 성전 결혼이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자 모든 사람, 특히 감독님이 곤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감독님은 옳았습니다.
이 주제에 관해 말씀드리면서 저는 청중 가운데 있는 모든 청년 여러분에게 부탁을 드리겠습니다. 교회에서 가장 과로하는 사람은 우리 감독님들입니다. 제발, 그들의 무거운 짐을 가중시키는 일은 하지 마십시오. 물론 추천서를 받기 위해 감독님을 만나야 하겠지만 추천서나 교회의 승인을 받는 일을 마지막 순간까지 미루다가 새로운 와드로 이사해서 새 감독을 찾아가는 일은 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그분은 여러분의 합당성을 확인하기 위해 이전 감독을 찾아야 합니다. 여러분의 나태함이나 계획성 없는 행동으로 바쁜 감독님들에게 더 무거운 짐을 지우지 마십시오.
안식일은 특별한 날입니다
서두에서 저는 안식일에 해서는 안될 일에 대해 말씀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저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사람들이 약속된 축복을 받기에 합당해지도록 해야 할 적극적인 일들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우리의 노력은 안식일을 본질적으로 다르게 바라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스펜서 더블류 킴볼 장로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은] 주님을 예배하며 그분께 우리의 감사와 고마움을 표현하는 날입니다. 모든 세상적인 관심사를 떠나 주님을 겸손하게 찬양하는 날입니다. 겸손은 승영을 향한 출발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회장들의 가르침: 스펜서 더블류 킴볼[2006년], 170쪽)
세월이 흘러 킴볼 장로님이 교회 회장이 되신 뒤 제일회장단은 세 시간으로 통합된 모임을 실시했고, 그 형태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분들은 이 계획이 안식일을 합당하게 준수해야 할 각 회원과 가족의 책임에 중점을 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일회장단은 이것이 “개인 경전 공부와 가족 중심의 복음 공부를 위한” 시간을 증대시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기타 안식일에 적합한 활동, 예를 들어 가족 유대를 강화하고, 아픈 사람과 거동이 불편한 사람을 방문하며, 서로에게 봉사하고, 개인 및 가족 역사를 기록하고, 계보 사업, 선교 사업 같은 활동을 적절하게 계획하고 수행해야 한다.”(제일회장단 서한, 1980년 2월 1일)고 하셨습니다.
올해, 교회의 멜기세덱 신권 정원회와 상호부조회는 스펜서 더블류 킴볼 회장님의 가르침을 공부했습니다. “안식일-기쁨에 찬 날”이란 제목의 장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읽게 됩니다. “안식일은 합당하고 거룩한 일들을 행하는 성스러운 날입니다. 일과 여가 활동을 절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안식일에는 건설적인 생각과 행동을 해야 하며, 안식일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단지 빈둥거리는 것은 안식일을 어기는 것입니다.”(가르침, 170쪽)
계명은 안식일에 건설적인 일을 하도록 요구합니다. 또한 나머지 6일에는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하라]”(출애굽기 20:9)라고 명했습니다. 게으른 사람들은 이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성찬을 취하는 것은 안식일 준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일 것입니다. 성찬은 매주 안식일에 취하도록 제정된 교회의 의식입니다. (교리와 성약 59:9~10 참조) 이 의식을 통해 성약을 맺고 지킬 때 우리는 “항상 그의 영과 함께 하[리라]”는 약속을 받습니다. (교리와 성약 20:77)
항상 그의 영과 함께 하는 것은 왜 중요합니까? 성신의 임무는 아버지와 아들을 증거하고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이끄는 것입니다. 이 증거는 우리의 개인적인 간증에 절대적으로 중요합니다. 성신으로부터 증거를 받지 않는다면, 우리는 구원의 계획의 창시자이신 아버지와 우리의 구주이신 아들에 대한 간증을 가질 수 없습니다. 모든 회원에게는 성신의 은사가 있지만 매주 안식일에 합당하고 적절하게 성찬을 취하는 일은 강한 간증을 유지하는 데 여전히 필수적입니다. 침례 성약을 새롭게 하는 이 행위를 통해서만 우리는 항상 그의 영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성신은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할 임무가 있습니다. 개인적인 계시가 필수적인 이유는 그것으로 위험에 대해 경고받고, 매일 주님과 조화를 이루며, 그분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대로 발전하며 살아가도록 인도해 주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이유들 때문에 매주 성찬식 모임에 참석하고, 합당하고 적절하게 성찬을 취하는 것은 우리가 매일 종교 생활을 하는 근간입니다.
이 시점에서 저는 안식일에 대한 저의 생각에 영향을 미친 경험을 나누겠습니다. 50년 전에 제가 법과 대학원생이었을 때, 저는 정통파 유대교도인 학교 친구와 함께 작은 스터디 그룹에 속해 있었습니다. 금요일 오후면 그는 안식일이 시작되는 일몰 전에 시카고 북쪽에 있는 집에 가기 위해 기차를 타러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기차까지 그를 바래다주며 계속해서 우리의 공부에 대해 토론했습니다.
역에 다다랐을 무렵, 우리의 대화는 안식일로 바뀌었습니다. 저는 안식일을 준수하는 그의 충실함을 존경하며, 나 역시 안식일에는 한 번도 공부해본 적이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어, 나는 안식일에 공부하는데. 하지만 다른 날만큼 능률적이지는 않아. 줄 긋는 데 연필을 사용할 수 없거든.” 그는 연필이 도구이므로 안식일에는 도구를 사용할 수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저는 종종 우리 두 사람의 안식일 준수의 차이점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에게는 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일련의 규칙들이 있었습니다. 저는 일련의 원리들을 따르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엿새 동안은 저의 일인 법학 공부를 열심히 했으므로, 안식일에는 학생으로서의 일은 삼가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제가 제 친구 그리고 그 친구가 안식일에 대해 취한 그 접근법에 대해 비판적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주십시오. 제가 정통 유대교인들의 안식일 준수에 대해 더 많이 배울수록 여러 가지 면에서 그들의 실천력은 저와 다른 여러 후기 성도들의 실천력을 초월한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음을 덧붙여야겠습니다. 그들에게 안식일은 철저하게 주님을 기억하고, 예배하며, 그의 백성에게 주신 그분의 축복을 기뻐하는 데 전념하는 시간입니다. 안식일은 매우 성스럽습니다. 가족들이 함께 모입니다. 그들은 집회에 참석하기도 하지만 “그 시간 외의 안식일은 가족이 함께 시간을 보내고, 방문하고, 식사하고, 경전을 공부 … 하도록 온전히 주어집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축복을 빌어줍니다. 그와 더불어 “가족을 갈라 놓거나 그 날의 평화를 방해하는 … 그 어떤 활동도 안식일에 행해지지 않습니다.” (Jeffrey R. Chadwick, "The Jewish Sabbath", [미간행물, 2007년], 2~3쪽)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우리의 규칙은 분명히 정통 유대교보다는 적습니다. 하지만 저는 우리가 안식일의 적극적인 목적들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는 그들의 탁월함에 필적할 수 있을지 의문을 가져봅니다. 제 자신의 안식일 활동을 되돌아봤을 때, 저는 안식일에 해야 할 일 보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더 잘 준수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저도 선지자 이사야가 “즐거운 날 … 여호와의 성일”(이사야 58:13)이라 일컬었던 것과 같은 안식일을 만들기 위해 해야 할 일들에 대한 경전의 가르침을 그다지 잘 적용하지는 못했습니다.
이사야서 58장에서 다음 내용을 읽을 수 있습니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하지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하게 여기고 네 길로 행하지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하지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이사야 58:13~14)
개인과 가족은 안식일을 “즐거운 날”로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안식일을 준수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증진시키고 우리의 가족을 강화하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14년 전, 제일회장단은 모든 후기 성도들에게 “이 성스러운 날을 세상적인 활동에서 분리시키고, 예배의 영에 참여하고, 감사와 봉사, 안식일에 적합한 가족 중심 활동을 함으로써 스스로를 성결케 될 것”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Ensign, 1993년 1월호, 80쪽)
우리는 안식일에 영적으로 새로워지는 활동을 해야 합니다. 킴볼 회장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예배하는 마음이라는 척도로 각 안식일 활동을 가늠”해야 합니다. (가르침, 176쪽) 그분은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히브리어로 안식일이라는 말은 ‘휴식’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조용한 평안, 마음과 영의 평화를 의미합니다. 안식일은 이기적인 관심사와 열중케 하는 활동에서 벗어나는 날입니다.”(가르침, 170쪽)
또한 그분은 여러분이 특히 관심 있게 여기는 안식일 활동 한 가지를 승인하셨습니다. “안식일은 … 합당한 교제를 하는 날[입니다.]”(가르침, 171쪽) 저는 합당한 이란 단어를 강조하겠습니다
또한 안식일은 복음의 중심인 가족 화합과 가족 유대 강화의 시간입니다. 킴볼 회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안식일에] 가족이 자리를 함께하여 서로 대화하고, 경전을 공부하고, 친구와 친척, 그리고 아픈 사람과 외로운 사람을 방문하는 시간을 가지십시오. 안식일은 또한 일지를 기록하고 계보 사업을 하기에 매우 좋은 시간입니다.”(가르침, 170쪽)
조셉 에프 스미스 회장님은 가족과 안식일에 대한 중요한 원리를 가르치셨습니다. 교회 모임에 참석하는 것과 더불어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가능하면 가정에서 저희 가족과 함께 앉아 대화하고 그들과 함께 다른 사람을 방문하며 그들과 더욱 친숙해지는 특권을 갖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는 될 수 있는 한 안식일의 대부분의 시간을 이러한 목적, 곧 저의 자녀들과 친숙해지고 그들과 연락을 취하며 경전을 읽으며 오락이나 농담, 웃음거리나 흥겨움 그리고 이와 비슷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안식일을 보내는 특권을 갖고 싶습니다.” (제임스 알 클라크,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의 제일회장단 메시지(1965~1975년), 총 6권 중 제 5권, 17~18쪽)
저는 기혼이거나 미혼인 청년 여러분께 안식일을 가족 화합의 날로 만들 것을 부탁드립니다. 가족을 갈라놓는 오락을 위해 흩어지지 마십시오. 함께 예배하고, 공부하고, 대화하고, 기뻐하십시오. 안식일이 “즐거운 날 … 여호와의 성일”이 되게 하십시오. 그렇게 하면 이사야가 약속한 것처럼 될 것입니다. “네가 여호와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기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이사야 58:13~14)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우리는 하늘 부모의 자녀들입니다. 우리는 목적을 갖고 이 지상에 왔으며, 그 목적은 우리가 말씀드린 영원한 가족 관계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아버지의 계명을 지킨다면, 그리고 그분의 계명 중 하나인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다면, 현세나 영원을 통해 그분의 가장 좋은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더 잘 영위하고 영생에 이르는 길에 더 빨리 진입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영원한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이 영생을 “하나님의 모든 은사 가운데서 가장 큰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교리와 성약 14:7) 저는 이 말씀이 참됨을 간증드리며, 그분의 축복이 고귀한 젊은 친구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간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 2007년 Intellectual Reserve, Inc. 판권 소유. 영어 승인: 6/06. 02157 3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