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완벽주의: “다른 그림 찾기”라는 위험한 게임
2019년 9월호


청년 성인

완벽주의: “다른 그림 찾기”라는 위험한 게임

글쓴이는 호주 태즈메이니아에 산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부족함을 느낄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판단하고 있는지 확인해 보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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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 속의 사람들

삽화: 켈시 게리티 라일리

어렸을 때 나는 지역 신문에 나오는 ‘다른 그림 찾기’를 좋아했다. 그것은 나란히 놓인 거의 똑같은 두 그림을 보고 그 둘 사이의 작은 차이점들을 찾아내는 게임이다. 그림을 구석구석 집중해서 살피면 전부는 아니더라도 많은 차이점을 찾는 데 성공할 수 있다. 이 게임의 목표는 그림을 감상하거나 두 번째 그림을 완성하는 것이 아니다. 이 놀이의 진짜 목표는 첫 번째 그림의 불완전한 복사본에 들어 있는 모든 결함을 찾아내는 것이다.

우리 청년 성인들이 겪게 되는 익숙한 어려움 중 한 가지는 반드시 도달해야 한다고 꿈꾸는 기준에 자기 자신이 미치지 못한다고 느끼는 것이다. 우리는 갈수록 자신을 남과 더 자주 비교하게 된다. 멋진 직장에 들어가서 성공적인 사회생활을 시작한 사람, 학업 성적이 완벽한 사람, 나보다 친구가 더 많은 사람, 그리고 나보다 더 친절하고, 지혜롭고, 관대하고, 우아한 사람들을 보며 자신과 비교한다. 그들은 아마 우리보다 나이도 어릴 것이다!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 사이에서 ‘다른 그림 찾기’를 하는 것은 분명 쉬운 일이고, 우리는 언제든 남들이 나보다 “더 나은” 이유를 셀 수 없이 꼽을 수 있다.

이런 사고방식은 자신의 가치가 우리의 성취, 성품, 또는 세상의 부에 따라 결정된다고 믿는 경우라면 특히 더 위험하다. 게다가 ‘다른 그림 찾기’ 게임은 우리가 살면서 발전시킨 강점이나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자질은 거의 찾아보지 않는다. 또, 언젠가는 그리스도와 같이 완벽해질 수 있는 잠재력이 우리에게 있다는 근본적인 진리를 무시한다. 구주께서 “나나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온전하심같이 너희도 온전하라”라고 선언하셨을 때(제3니파이 12:48), 나는 그분이 미래에 대한 우리의 시야를 넓히고 우리에게 희망을 주시려 했다고 믿는다. 결국, 구주의 이런 권유는 회개하라는 요청이자 그분께서 요구하신 일을 우리가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신뢰의 표현이었다. 우리가 받은 위대한 도전 과제는 질투하고, 분노하고, 절망하고, 의심하는 육에 속한 사람의 성향을 극복하고 겸손, 회개, 신앙, 소망을 선택하는 것이다.

지금은 의로움을 추구하고 후에 온전함을 기대한다

대적이 조장하는 부정적인 “완벽주의”를 극복하는 단계 중 하나는 완벽주의의 실제 의미를 이해하는 것이다. 러셀 엠 넬슨 회장님은 온전함을 주제로 말씀하시면서, 마태복음 5장 48절에 나오는 온전함의 유래는 “완전[을 이룸]”을 뜻하는 그리스어 단어라고 설명하셨다.1 우리 중 그 누구도 이 필멸의 삶에서는 “완전[을 이룰]” 수 없다. 우리는 영원한 삶을 통해 완전함을 이룩하게 될 것이다.

온전하다는 개념이 어렵고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 우리는 온전함에 이르는 길을 따라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갈 수 있다. 예를 들어, 온전한 십일조를 바칠 때 우리는 십일조의 법을 완전하게 지킬 수 있다. 또한 우리는 매일 기도할 때, 그렇게 하는 것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우리가 온전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성약의 길로도 알려진) 온전에 이르는 여정의 각 단계는 우리에게 기쁨을 주도록 설계되었다. 정기적으로 자신을 점검해 본다면, 본인이 진보하고 있으며 우리 아버지께서 우리 삶에 일어나는 영적 가속화를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다시 확신하게 될 것이다.

의로움과 온전함은 같은 말이 아니다. 온전함은 결과지만, 의로움은 우리가 매일 선택하는 신앙과 회개의 패턴을 말한다. 온전함이 목적지라면, 우리가 맺는 성약은 여권이고, 의로움은 그 여정에서 내딛는 발걸음이다. 온전함을 이러한 관점으로 이해할 때, 우리는 참을성 있게 의로운 패턴을 꾸준히 발전시키고 또한 좋은 일들이 일어나기를 기대할 수 있다.

실패를 예상하고 회개를 사랑한다

최근에 나는 칠십인의 린 지 로빈스 장로님이 말씀하신 이 내용을 숙고해 보았다. “[하나님]은 우리가 만약에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서 회개라는 대체 계획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회개는 우리가 실수할 것을 아시고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그분의 계획입니다.”2 이생은 영원한 삶을 준비하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시험의 기간이다. 회개는 자기 자신을 인식하는 방식을 변화시키고 우리가 하나님과 구주께 더 가까워지도록 함으로써 우리를 준비시킨다. 우리는 자신이 아마도 매일 실패 또는 실수를 할 것을 예상해야 한다. 그것을 예상하지 못하거나 그것 때문에 절망해서는 안 된다. 사실 우리는 자신의 단점이나 실수를 인식할 때 기뻐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협력하여 우리의 약점을 강점으로 변화시킬 기회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목표는 온전함이지만, 우리가 걷는 길에는 회개, 그리고 행복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매일 전진하는 태도가 수반된다.

그리스도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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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바라봄

십이사도 정원회의 닐 에이 맥스웰(1926~2004) 장로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랜 기간을 줄기차게 소망한 바에 따라 우리가 궁극에는 무엇이 되며 영원토록 무엇을 받게 될 것인지가 결정됩니다.”3 매일 하는 선택이 우리가 어떤 사람이 될지를 결정한다. 구주와 같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그 동기가 그분을 향한 사랑이라면, 우리는 그런 소망을 반영하는 선택을 할 것이고 변화될 것이다.

장애물을 만나거나, 실수하거나, 유혹에 빠질 때, 우리는 시선을 그리스도에게서 돌릴 수도 있고, 아니면 신앙, 소망, 인내, 상한 마음과 통회하는 심령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수도 있다. 우리가 직면한 어려운 상황에 관한 해결책이나 해답은 언제나 그리스도와 그분의 복음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그분은 우리를 가르치시고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이다.

인생의 많은 어려움은 이생에서 극복하게 될 것과 다음 생에서 극복하게 될 것 이렇게 두 가지 항목으로 분류된다. 장애, 우울증 및 불안증, 또는 지속적인 유혹 등은 다음 생에서 극복할 것에 해당된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온전해질 수 있게 하실 권능이 있다. 구주는 우리를 변화시킬 권능이 있으시다. 겸손을 선택할 때, 우리는 주님의 시간과 그분의 뜻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분의 도움과 인도를 적극적으로 구한다면 우리는 힘과 신성한 격려, 평화를 찾게 될 것이다.

교만을 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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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 중

대적은 절대 우리의 어려움에 대해 좋은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실패나 약점을 발견할 때면, 그는 우리가 가능한 한 완벽해 보여야 하니 그것들을 사람들로부터 숨기라고 부추긴다. 이것은 교만의 한 형태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어려움에 항상 좋은 해결책을 제공하시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분의 해결책이 쉬운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주님은 복음을 나눌 때 그분을 신뢰하라고 권유하시는 반면, 사탄은 너는 말이 유창하지 않기 때문에 복음을 나눠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가 해야 할 말을 “바로 그 순간에” 주리라고 약속하신다.(교리와 성약 100:6) 참으로, 대적은 우리의 의심을 키우지만 주님은 우리의 신앙을 키우신다.

주님은 우리가 ‘다른 그림 찾기’나 ‘약점 숨기기’에 몰두하는 대신 그분을 바라보고 “약점을 변화시키는 일”에 참여하기를 바라신다. 교만은 근본적으로 경쟁적이다. 하지만 삶은 절대 경쟁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모범이자 친구, 지지자로 선택할 때, 우리는 서로를 비교하는 해로운 일을 그치고 완전을 향한 길에서 평화를 찾을 수 있다.

이것을 기억하자. 우리는 모두 인생에서 불완전함이라는 난관과 그와 관련된 약점을 경험한다. 괴로워하는 누군가를 보았을 때, 우리는 긍정적인 힘이 되어 그들을 더 높이 북돋아 줄 수 있다. 다른 사람이 성공하는 모습을 본다면, 진심으로 칭찬해 줄 수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의로움이나 성공이 남들에 비해 나은지 부족한지 판단하려 하는 데서 이득을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비록 남들은 아닐지 몰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가치를 보신다. 그분이 보시기에 우리의 가치는 무한하다. 우리는 언제나 그분의 자녀일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조건 없이 사랑하시며, 그분과 같이 되려는 우리의 의로운 노력을 기뻐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삶을 방관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하시고,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계시며, 우리를 구해서 다시 하늘 집으로 이끌기 위해 힘쓰고 계신다. 우리는 구주께서 주시는 힘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으며 그분과 함께라면 불가능할 것이 없다. 불완전함으로 정의된 이 삶에서 주님은 우리의 희망이자 모범이시다. 그분은 우리를 우리의 형제 자매들과 비교하여 판단하시지 않을 것이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을 보시며, 온전함을 향해 계속되는 여정에서 우리가 항해해 나아갈 때 순풍을 보내 주실 것이다. 모두 회개하고 그분을 바라보며 신앙으로 행하기를, 그러면서 궁극적으로 “그의 안에서 온전”해질 수 있다는 주님의 약속에서 희망을 얻기를 바란다.(모로나이서 10:32)

  1. 러셀 엠 넬슨, 「언젠가는 실현될 온전함」, 『성도의 벗』, 1996년 1월호, 86쪽.

  2. 린 지 로빈스,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 『리아호나』, 2018년 5월호, 22쪽.

  3. 닐 에이 맥스웰, 「우리들의 마음의 욕망에 따라」, 『성도의 벗』, 1997년 1월호, 2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