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역사
40 옳은 일


“옳은 일”, 『성도들: 후기의 예수 그리스도 교회 이야기, 제2권, 그 어떤 신성하지 않은 손도, 1846~1893년』(2020) 제40장

제40장: “옳은 일”

제40장

옳은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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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트레이크 태버내클의 창문들

1890년 9월 26일 아침이었다. 칠십인 제일 평의회의 일곱 회장 중 한 명인 비 에이치 로버츠는 잠에서 깨어나며 자신이 집에 거의 다 왔을 것이라고 짐작했다.1

자신이 타고 온 북행 열차가 그날 아침 열 시쯤에 솔트레이크시티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열차는 밤사이에 빠르게 이동하는 대신, 유타 한복판에 있는 사막의 덤불 속 어딘가에 멈춰 섰다.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남행 열차가 탈선해 주위 선로는 박살이 나 있었던 것이다. 비 에이치와 함께 여행 중이던 네 명의 십이사도 정원회 일원들은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었기에, 비 에이치와 사도 존 더블유 테일러는 사고 현장으로 걸어가 보기로 했다. 그곳에 도착해 보니, 탈선한 열차의 화물칸들만 전복되어 있었다. 객차들은 멀쩡했으므로, 비 에이치와 존 더블유는 발이 묶인 승객들에게로 갔다.

한 객차 안에서 존 더블유는 비 에이치에게 손짓하며 신문을 하나 내밀었다. 비 에이치는 그 신문을 받아들고 기사 제목들을 읽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윌포드 우드럽 회장이 국법을 따라 이제 새로 행하는 복수결혼은 허용하지 않겠다는 공식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었다.2

잠시 동안, 비 에이치는 자신의 몸 속으로 한 줄기 빛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괜찮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는 곧 그의 영혼에 울렸다. 잠시 안도감과 이해력이 감돌았다. 하지만 그 문제에 관해 숙고하자, 그의 분석적인 사고력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하며 여러 의문이 밀려왔다.3

그는 자신이 복수결혼을 위해 감옥에서 지냈던 시간과 그 때문에 자신의 아내들이 치른 희생을 떠올렸다. 성도들이 복수결혼을 지키고 옹호하기 위해 겪었던 그 모든 일은 어떻고, 수십 년간 그것을 지지하며 설파된 수많은 설교는 또 어찌 된단 말인가? 비 에이치는 성도들이 복수결혼으로 말미암아 어떤 난관에 봉착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지해 주실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이제 그들은 겁쟁이가 되기로 한 것인가?4

비 에이치와 존 더블유는 함께 여행하던 다른 사도들과 합류했다. 조지 큐 캐넌의 아들인 에이브러햄 캐넌은 그 소식에 놀라지 않는 것 같았다. 프랜시스 라이먼 역시 담담하게 우드럽 회장이 이미 미국에서 복수결혼을 새로 행하지 못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 성명서가 그 주제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공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하지만 비 에이치는 사도 존 헨리 스미스의 마음도 그 자신과 존 더블유 테일러처럼 심하게 흔들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남행 열차 승객들과 이야기를 나눈 후, 비 에이치와 사도들은 사고 현장으로부터 북쪽으로 짧은 거리를 걸어 솔트레이크시티로 향하는 다른 열차에 올라탔다. 기차가 덜커덩거리며 선로를 따라 나아가는 동안, 그들의 대화는 주로 그 성명서에 관한 것이었다. 마음이 더욱 괴로워진 비 에이치는 마침내 사도들과 함께하던 자리를 빠져나왔다.

혼자 따로 앉은 그의 마음속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들끓었다. 그의 동반자들이 무슨 이유로 성명서를 지지하든, 그는 성도들이 복수결혼의 원리를 고수했어야 하는 이유를 열 가지는 더 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때문에 교회가 전멸한다고 할지라도 말이다.5


며칠이 지난 9월 30일, 히버 그랜트는 가도 하우스에서 열린 모임에서 십이사도 정원회의 다른 회원들과 함께 그 성명서에 대해 논의했다. 히버는 교회에서 그 성명서를 발표한 것이 잘한 일이라고 믿었다. 물론 그렇게 해서 성도들의 시련이 끝나게 될지는 그도 확신하지는 못했다.6

그 성명서는 교회가 더 이상 “일부다처제나 복수결혼을 가르치지 않으며, 어떠한 사람도 그런 결혼을 새로 실행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라고 분명히 밝혔지만, 성명서는 성도들과 정부 양쪽에 몇 가지 불명확한 문제를 던졌다.7

히버가 사도들과 대화를 나눌 때, 몇몇 사도들은 그 성명서가 일시적인 조치라고 말했다. 성도들이 합법적으로 복수결혼을 시행할 수 있을 때까지 그 시행을 유보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회장인 로렌조 스노우는 그것이 다른 사람들에게서 호의를 얻기 위해 필요한 단계라고 믿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 성명서를 발표한 덕에, 마음이 정직한 많은 사람들이 우리에게 우정과 존중을 보일 것입니다. 그 성명서는 분명히 효용성이 있을 것이며, 그렇기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8

프랭클린 리차즈는 이렇게 덧붙였다. “저는 우드럽 회장님이 그 성명서를 발표할 준비를 하실 때 하나님께서 그분과 함께하셨다고 확신합니다. 그 성명서가 낭독되었을 때, 저는 그것이 옳은 일이고 제때 주어졌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9

존 더블유 테일러는 그 성명서에 대해 여전히 마음이 편치 않았다. 그는 히버가 십이사도 정원회로 부름받은 직후에 사도 부름을 받았었다. 아버지 존 테일러 회장이 사망한 후, 존 더블유는 아버지의 문서 가운데서 결혼에 관한 계시라고 알려진 것을 하나 발견했다. 1886년 9월 27일 자로 기록된 그 계시는 존 더블유가 보기에 복수결혼을 시행하라는 계명이 결코 철회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듯이 보였다.10

그 계시가 십이사도 정원회에 소개되거나 성도들에 의해 경전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지만, 존 더블유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아버지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그는 계시가 계속적이며, 계시가 새로운 상황과 문제를 다룬다는 것을 알았기에, 하나님께서 우드럽 회장에게도 계시를 주셨다는 신앙이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주님께서 우드럽 회장님에게 이 성명서를 주셨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그분은 때가 되면 그것을 가져가실 수도, 다시 주실 수도 있습니다.”11

이튿날, 더 많은 사도들이 각자 그 성명서에 관한 자신의 생각을 언급했다. 존 더블유 테일러와 마찬가지로 존 헨리 스미스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우드럽 회장님이 그 성명서를 발표하신 것은 기꺼이 지지하지만, 그것을 발표한 것이 현명한지에 대해서는 약간 혼란스럽습니다. 그 성명서가 하나의 백성인 우리에게 유익이 되기보다는 해를 끼칠까 봐 두렵습니다.”12

그 정원회에서 유일하게 일부일처주의자인 안톤 룬드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 성명서가 결과적으로 유익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발표가 나온 것을 찬성합니다.”13

히버 역시 자신은 그 선언에 대해 만족한다고 정원회에 말했다. “그런 성명서가 나오지 못할 하등의 이유가 없습니다. 우드럽 회장님은 그저 우리가 해 온 것을 세상에 알렸을 뿐입니다.”14

그다음 날, 사도들은 제일회장단과 만났으며, 저마다 그 성명서를 하나님의 뜻으로 지지했다. 이후에, 일부 사도들은 교회의 비판자들이 그 성명서에 만족하지 못하고 복수의 부인과 헤어지거나 이혼하지 않은 남성들을 계속 고발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우드럽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향후에 어떻게 해야 할지에 관한 계시는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각자 자신의 아내들에게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히버에게 복수결혼으로 맞은 아내인 아우구스타와 에밀리를 강제로 버리도록 내몰리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날 일지에 히버는 이렇게 적었다. “이 일은 나에게 큰 시련이 되리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일은 어떤 것도 지지할 수 없을 것 같다.”15


10월 6일, 조지 큐 캐넌은 교회의 가을 연차 대회 셋째 날에 참석하기 위해 태버내클에 도착했다. 모임을 시작하고 얼마 후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올슨 휘트니를 소개했다. 솔트레이크시티 제18와드의 감독인 올슨은 모임에 참석한 수천 명의 성도들 앞에서 그 성명서를 낭독하도록 요청받았다.16

조지는 그 성명서를 들으면서 우드럽 회장이 자신에게 말씀을 하도록 요청한다면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 모임에 앞서 우드럽 회장은 조지가 말씀을 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암시를 주었지만, 조지는 성도들 앞에서 자신이 첫 번째로 그 성명서에 관해 말씀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가 공적인 말씀을 전한 모든 세월을 통틀어, 그렇게 어려운 일을 하도록 부탁받은 적은 결코 없었다.17

그 전날, 조지는 이 모임에 참석할 성도들을 준비시키기 위해 그들에게 제일회장단과 계시에 관한 설교를 했었다. 조지는 이런 설교를 전했다. “교회의 회장단은 여러분이 걷는 것과 똑같이 걷습니다. 여러분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듯 그분들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분들은 하나님께서 계시를 주실 때마다 거기에 의지해야 합니다. 그분들은 주님이 보시듯 처음부터 그 길의 끝을 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 후 조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님의 생각과 뜻을 구하는 것이 다입니다. 그분의 생각과 뜻이 주어지면, 그것이 우리가 이전에 가졌던 모든 견해와 상충된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리키시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그분을 신뢰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권이 없습니다.”18

올슨이 성명서 낭독을 마치자, 로젠조 스노우가 성도들에게 그것에 대한 지지를 물었다. 회중석 곳곳에서 손이 올라왔다. 단호하게 손을 드는 이들도 있고, 쭈뼛쭈뼛 손을 드는 이들도 있었다. 전혀 손을 들지 않은 이들도 있었다. 많은 성도들의 눈에는 눈물이 맺혔지만 직접적인 반대는 없는 듯했다.19

그런 후 우드럽 회장은 조지를 향해 말씀을 하도록 권했다. 조지는 마음속으로 기도하며 연단으로 다가갔지만, 그의 머릿속은 하얬다. 그런데 그가 말씀을 시작하자, 두려움은 사라지고 전할 말과 생각들이 마구 떠올랐다. 조지는 교리와 성약 124편 49절을 폈다. 그것은 그가 우드럽 회장이 복수 결혼에 관한 교회의 새로운 입장을 설명하는 것을 처음 들었을 때 우드럽 회장이 언급한 성구였다.20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사람의 아들 가운데 어떠한 자들에게 내 이름을 위하여 일을 하라는 명령을 주어, 그 사람의 아들들이 그 일을 수행하려고 가서 자기들의 능력을 다하고, 자신들이 가진 것을 다하여 부지런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는데, 그들의 원수들이 그들을 공격하여 그 일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방해할 때에는, 보라, 그 사람의 아들들의 손에 더 이상 그 일을 요구하지 아니하고, 그들의 헌물을 받음이 내게 마땅하도다.”21

그 성구를 소리 내어 읽은 조지는 회중에게 성도들이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려고 온 힘을 다했다고 말했다. 이제 주님은 선지자를 통해 새로운 방침을 주신 것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생각과 뜻을 알려 주실 때, 저를 포함한 모든 후기 성도들이 그것에 기꺼이 순종하기를 바랍니다.”

그는 이 성명서가 하나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의심하며 선지자가 그것을 진작에 발표했더라면 최근 몇 년간의 고통과 박해는 피할 수 있었을 텐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는지에 대해 의문을 품는 성도들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는 그런 사람들에게 성명서에 대한 개인적인 간증을 구하라고 권고했다.

그는 이렇게 촉구했다. “혼자 조용히 있을 수 있는 곳으로 가십시오. 하나님께서 그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분께 간증을 달라고 요청하고 간구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이 빈손으로, 불만스러운 마음으로 그곳을 나오는 일은 없을 것임을 약속드립니다.”22

조지가 말씀을 마치자, 우드럽 회장이 연단으로 갔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왕국과 교회를 받아들이고, 당신의 사업을 이룩할 백성을 준비시키고 계십니다. 형제 자매 여러분, 그것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 후 이렇게 말했다. “주님께서는 나나 또는 이 교회의 회장의 직을 맡는 다른 어떠한 사람이 여러분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는 것을 결코 용납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계속해서 그는 성명서가 하나님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의심하는 성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안심시켰다. “그러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한 일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들어 있지 않습니다. 만일 내가 그러한 일을 하려고 시도한다면, 주님께서는 나를 나의 지위에서 [물러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런 후 우드럽 회장은 성도들을 축복하고 단상에 있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왔다.23


그날 회중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성명서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갖고, 그 덕분에 교회의 박해가 줄어들 것이라 기대하며 태버내클을 떠났다. 그들은 모임에서 영적 힘과 평안을 느꼈다. 하지만 마음이 혼란스럽거나, 갈등을 겪거나, 심지어 배신감을 느끼는 성도들도 있었다.

복수결혼은 크나큰 도전을 안겨 주었고 그중에는 극심하게 고통스러운 것들도 있었지만, 복수결혼은 많은 성도들의 삶에 축복이 되었다. 두 세대에 걸쳐 복수결혼이 시행되면서 결혼을 소망하는 거의 모든 사람이 결혼을 할 수 있었다. 많은 성도들이 대가족을 이루며 충실한 자녀들을 키웠고, 그 자녀들은 헌신적인 부모, 교회 회원, 지도자, 선교사가 되었다. 또한 다문화 간에 많은 결혼이 이루어져, 교회의 다양한 이민자들이 단합을 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성도들은 박해로 함께 고통을 겪으며 똘똘 뭉치게 되었고 하나님의 선택된 성약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다지게 되었다.24 2천 명이 넘는 성도들이 일부다처제, 불법 동거, 또는 복수결혼과 관련된 기타 행위로 기소되었다. 그들 중 930명가량이 유죄 선고를 받아 감옥에 들어갔다. 마틴 해리스의 종손녀인 벨 해리스는 자신의 남편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지 않은 탓에 갓난 아들에게 젖을 먹이던 중에 감옥으로 보내졌다. 많은 성도들에게 그처럼 가혹한 경험들은 그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로서 기꺼이 치른 희생이었다.

비 에이치 로버츠는 그 연단에서 성명서가 낭독되는 것을 듣는 것이 일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는 공개적으로 성명서를 반대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그가 앞서 받았던, 그 성명서가 옳다는 확신이 다시 들지 않았기에 손을 들어 성명서를 지지할 수가 없었다.25

본부 상호부조회 회장인 지나 영은 성명서를 지지했지만, 그녀에게는 무척 힘든 일이었다. 그녀는 그날 밤 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께 복종했다.”26

한 달 전에 사모아에서 선교 사업을 하고 돌아온 조셉 딘도 그날 태버내클에 있었다. 그는 성명서가 고통스럽긴 하지만 필요한 조치라고 여겼다. 그는 일지에 이렇게 적었다. “성도들 중 다수가 충격을 받고 혼란스러워하며 어떻게 의사 표시를 해야 할지 난감해하는 것 같았다. 상당수의 자매들이 소리 없이 울었고 형제들보다도 더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27

다음 날 아침이 밝아왔으나 날씨는 쌀쌀하고 궂었다. 지붕 위로 비가 후두두 떨어지는 동안, 몇몇 성도들은 성명서가 자신들의 일상생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해했다. 그 성명서에는 이미 복수결혼을 한 성도들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알려 주는 구체적인 방침은 나와 있지 않았다. 복수결혼을 한 일부 여성들은 자신이 버림을 받을까 봐 걱정을 했다. 다른 여성들은 성명서가 정부를 달래고 지하생활의 불안정과 두려움을 종식시키기를 바라며 낙관했다. 많은 여성들은 교회 지도자들이 어떻게 하면 성명서를 개개인의 상황에 가장 잘 적용할 수 있는지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할 때까지 계속 숨어 지내기로 했다.28

그 소식이 캐나다 카드스턴에 전해지자, 지나 프레센디아 카드와 그녀의 이웃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이내 그들은 그 성명서가 교회에 꼭 필요한 것임을 깨달았다. 지나는 『우먼스 익스포넌트』에 보내는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이제야 우리의 진정한 입장이 알려지고 인정을 받는 것 같아요. 성명서가 발표되기 전에는 그렇지 못했죠. 이곳에 있는 성도들은 모두 우리의 지도자들이 승리를 위해 그리스도의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여깁니다. 우리는 시온 땅에 있는 성도들과 하나입니다.”29

이후에 『영 우먼스 저널』에서 수사 게이츠는 젊은 여성들에게 성명서에 관해 가볍게 말하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했다. 그녀는 복수결혼이 여성들에게 성약의 결혼을 하고 가족을 이룰 수 있는 기회의 문을 열어 주었으며, 그렇지 않았다면 그들이 그런 기회를 누리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이제 그런 기회들은 사라지게 되었다.

그녀는 이렇게 권고했다. “시온의 젊은 여성인 여러분은 여러분의 어머니와 아버지 못지않게 이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명서가 발표된 것에 관해 단 한 마디라도 어리석고 철없이 환호하는 말을 내뱉지 마십시오. 그 이야기를 할 때는 가장 엄숙하고 성스러운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30

매나사에서 성명서에 관해 처음 알게 된 에밀리 그랜트는 침통했다. 하지만 그 성명서가 옳은 일이라는 증거를 느끼자 그녀의 침울한 마음은 기쁨으로 바뀌었다. 그녀는 남편에게 이렇게 썼다. “곤경에 처해 있는 우리에게 처음으로 쏟아지는 빛줄기를 보는 것 같아요.”31


이 무렵에 로레나와 벤트 라슨은 콜로라도에서 생계를 유지하느라 여러 달 동안 고생한 끝에 유타로 돌아가기로 마음을 정했다. 샌퍼드에 있는 농지에서는 수확물이 별로 나오지 않았다. 벤트는 다른 일을 구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 그는 유타 먼로에서 첫 번째 아내인 줄리아와 그들의 대가족과 함께 살 계획을 하였고, 로레나와 그녀의 자녀들은 160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마을에 사는 아이들의 외삼촌 가족과 함께 살기로 했다.32

라슨 가족은 다른 일행 없이 여러 날을 바위투성이 협곡을 지나왔다. 이제 유타주 모압의 너무나 아름다운 사막 마을이 그들에게 쉼터가 되어 주었다.

앞선 휴식지에서 벤트와 로레나는 교회 지도자들이 복수결혼에 관한 성명서를 발표했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더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하지만 모압에서 그들은 솔트레이크시티의 대회에 참석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로레나가 천막에 남아 있는 동안, 벤트는 그 성명서에 관해 알아보러 갔다.

천막으로 돌아온 벤트는 제일회장단과 십이사도 정원회가 교회에서 복수결혼 시행을 중지하고 국법을 따르기로 했음을 발표했다고 로레나에게 말해 주었다.

로레나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그녀는 복수결혼이 자신과 성도들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것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지금껏 그녀는 그 원리를 실천하느라 많은 희생을 치르면서 심적 고통과 시련을 겪었다. 그러나 그런 희생 덕분에 그녀는 더 높은 표준에 따라 생활하고,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며, 이웃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이제 와서 성도들에게 복수결혼을 중단하라고 하시는 걸까?

로레나는 벤트가 자신을 위로해주기를 바랐지만 벤트는 그녀를 위로하기는커녕 몸을 돌려 밖으로 나가버렸다. 로레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요, 네. 당신에게는 대수롭지 않은 일이죠. 당신은 다른 가족이 있는 집으로 가서 그쪽 부인과 오순도순 살면 될 테고, 나는 하갈처럼 쫓겨나겠죠.’33

로레나의 마음에 어두운 먹구름이 밀려왔다. ‘만일 주님과 교회 지도자들이 그 원리를 번복한 거라면, 복음의 어떤 부분도 소용이 없는 거야.’라고 그녀는 생각했다.34 그녀는 하나님이 흔들림 없는 확고한 분이듯이 복수결혼도 확고부동한 교리라고 믿었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그 외의 것을 믿을 필요가 있겠는가?

그러다가 로레나는 자신의 가족을 떠올렸다. 그 성명서는 자신과 아이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그리고 같은 처지에 있는 다른 여성들과 그들의 자녀들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들은 여전히 그들의 남편과 아버지에게서 사랑과 부양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주님을 섬기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지를 시험하기 위해 버려지는 것일까?

로레나는 침구 속으로 풀썩 들어갔다. 사방에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았다. 그녀는 땅이 갈라져서 자신과 아이들을 삼켜 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갑자기 천막 속에서 어떤 강력한 존재가 가까이 있다는 느낌이 왔다. 그러더니 한 음성이 들려왔다. “이것은 주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바치라고 명하신 것에 비하면 결코 불합리한 것이 아니란다. 주님께서 네가 만사에 기꺼이 순종하려 한다는 것을 보시면, 이 시련은 사라질 것이다.”

밝은 빛이 로레나의 영혼을 감쌌으며, 그녀는 평안과 행복을 느꼈다. 그녀는 모든 것이 잘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벤트가 천막으로 돌아왔다. 로레나는 그에게 자신의 고통을 거두어 간 존재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제야 벤트는 고백했다. “어떤 말로도 당신을 위로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버드나무 숲으로 갔었다오. 그리고 주님께 위로자를 보내 달라고 간구했다오.”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