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자료
제14과: 자녀들에게 복음의 원리를 가르침 (제2부)


“제14과: 자녀들에게 복음의 원리를 가르침 (제2부)” 결혼 및 가족 관계 반원 학습 지도서 (2000), 58–63

“제14과,” 결혼 및 가족 관계 반원 학습 지도서, 58–63

14

자녀들에게 복음의 원리를 가르침

제2부

적용을 위한 제언

자신의 필요 사항과 상황에 따라 다음 제언 중 한 가지 이상 행한다.

  • 가족들이 다 함께 참여하는 가족 봉사 활동을 위해 계획을 세운다.

  • 여러분의 자녀, 손자녀, 또는 조카나 조카딸, 또는 여러분의 가족에 속하는 어린이들 가운데 한 사람과 일대 일로 집안 일을 같이 한다. 일을 하는 동안에 그 어린이와 함께 대화를 나눈다. 그 어린이가 일을 도우려고 힘쓰는 것에 대해서는 평가하지 말고 다만 이 기회를 이용하여 복음 원리를 가르친다.

  • 소책자, 청소년의 힘을 위하여(34285 320)에 나오는 다음 주제의 내용을 읽는다. “신문 방송 매체: 영화, 텔레비전, 라디오, 비디오, 책 및 잡지”(11~13쪽); “음악과 무용”(14~15쪽); “성적인 순결”(15~17쪽) 내용을 검토한 다음에 여러분의 자녀들 가운데 누구와 이러한 내용을 읽고, 어느 것을 토론하면 유익할 것인지를 결정한다.

독서 과제

다음 기사에 대해 공부한다. 여러분이 기혼자일 경우, 여러분의 배우자와 함께 기사를 읽고 토론한다.

어린이들을 가르치십시오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
십이사도 정원회 회장 대리

수많은 사람들이 이 곳과 기타 다른 곳에 모여서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회원이면 누구나 갖고 있는 진리에 대한 억제할 수 없는 갈증을 느끼고 있음을 보이고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가장 가치 있을 말씀에 관해 기도드리는 가운데 3주만 있으면 제가 일흔다섯 번째 생일을 맞아 노년기에 이르게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50년 이상을 교사로 지내왔습니다. 제가 그 동안 배웠던 것 중에는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 분명히 있을 것입니다.

저는 경험을 통해 이러한 교훈을 배웠습니다. 인생은 때로 우리가 알기를 바라지 않았던 어떤 사실을 가르쳐 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쓰라린 교훈은 인생의 가장 가치있는 교훈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중년 후반으로 접어드는 과정에서 저는 배움에 관하여 그 밖의 다른 사실도 배웠습니다. 어느 의사와 환자 사이에 있었던 다음의 대화에 대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의사: “무엇을 도와 드릴까요?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환자: “선생님, 제 기억력이 문제입니다. 책을 읽어도 그것을 기억할 수가 없어요. 왜 방에 들어갔는지 물건을 어디에 두었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의사: “그래요? 언제부터 그런 증상이 있었습니까?”

환자: “무슨 증상으로 제가 얼마나 오랫동안 곤란을 겪었느냐고요?”

만일 이 이야기가 재미있다면, 여러분이 60세 미만이거나 아니면 여러분 자신을 비웃고 있는 것입니다.

자녀들이 어릴 때 가르침

나이가 들수록 여러분은 젊었을 때만큼 잘 배우고 기억하고 공부할 수 없습니다. 바로 그것이 선지자 앨마가 “네가 젊었을 때에 지혜를 배우라. 참으로 네가 젊었을 때에 하나님 계명 지키기를 배우라.”고 권고했던 이유일 것입니다.1

저는 성구와 시의 구절을 기억하는 데 점점 더 어려움을 느낍니다. 젊은 시절에는 한두 번 반복하면 그것을 외울 수 있었습니다. 여러 번 되풀이하여 말하거나 특히 글로 쓰면 그것은 제 마음속에 완전히 새겨졌습니다.

청소년기는 무엇이든 쉽게 배울 수 있는 시기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전부터 교회 지도자들이 어린이들과 청소년을 가르치는 교사들에게 그토록 관심을 가져왔던 이유입니다.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에게 복음과 인생의 교훈을 가르치는 것은 더 없이 중요한 일입니다.

주님은 그 첫번째 책임을 부모들에게 주셨으며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습니다.

“… 시온 … 에 자녀를 둔 부모가 그들의 나이 여덟 살일 때, 회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 그리고 침례와 안수에 의한 성신의 은사의 교리를 이해하도록 그들을 가르치지 아니할진대, 그 죄는 그 부모의 머리 위에 있느니라.”2

청소년을 가르치는 것은 이 교회의 기본적인 목적입니다. 가정에 먼저 책임이 있으며 다음으로는 교회에 그 책임이 있습니다.

지식을 쌓아 감

제가 알게 된 또다른 것은 우리가 젊었을 때 배웠던 것을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에 쌓은 지식은 필요한 순간을 위해 오랫동안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회원들이 감독의 권고를 무시하거나, 감독을 지나치게 의존하는 경향에 대해 몹시 염려하고 있습니다.

저는 연차 대회에서 감독에 관해 말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기도하면서 준비하던 중에 지난 50년 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하나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제가 가르칠 내용에 꼭 맞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연차 대회에서 말씀드린 그대로 다시 그 이야기를 인용하겠습니다.

“오래 전 저는 에머리 와이트와 함께 고등 평의회에서 봉사했습니다. 에머리는 10년간 시골 지역에서 하퍼 와드 감독을 지냈습니다. 그의 아내 루실은 스테이크 상호부조회 회장이었습니다.

“어느 봄날 아침 이웃 사람이 찾아와 루실에게 에머리가 집에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루실은 그가 밖에서 밭을 갈고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이웃 사람은 걱정스럽게 말했습니다. 그는 그 날 새벽 밭을 지나가다 에머리가 키우는 말들이 반쯤 갈다 남은 밭고랑에 고삐를 쟁기 위에 축 늘어뜨린 채 서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에머리는 보이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웃 사람은 시간이 많이 지난 후 다시 밭을 지나가다가 말들이 그대로 있는 것을 보고 뭔가 심상찮은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울타리를 넘어 밭을 지나 말들에게로 갔습니다. 에머리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급히 에머리의 집으로 가 루실에게 상황을 알렸습니다.

“루실은 차분하게 말했습니다. ‘어머, 놀라지 마세요. 누군가 어려운 일이 생겨서 감독님을 부르러 온 것일 테니까요.’

“몇 시간 동안 밭에 서 있던 말들은 교회의 감독과 그 곁을 지키는 보좌들의 헌신을 상징합니다. 비유적으로 말하면 누군가가 감독과 그 보좌들에게 도움을 구하면 그들은 말들을 다 갈지 않은 밭고랑에 그대로 세워 두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로 갑니다.”3

저는 전에 말씀에서 그 경험을 인용한 적이 없었고 그 경험에 대해 생각해 보지도 않았습니다.

저는 연차 대회에서 그것에 대해 말씀하기 전에 그 일을 제 마음속에 새겨 놓고 싶어서 에머리 와이트의 딸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그녀는 예전에 살았던 집에서 저를 만나 그녀의 부친이 그 날 갈고 있던 밭을 보여 주기로 했습니다.

제 아들 중 하나가 일요일 아침 일찍 저를 그 곳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제 아들은 그 곳에서 많은 사진을 찍었습니다.

아름다운 봄날 아침이었습니다. 들판은 이전에도 그랬듯이 새로 쟁기질이 되어 있었고 갈매기들이 새로 갈아진 땅에서 벌레를 잡아먹고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생각하자 영감을 받아 제가 청소년 시절에 외웠던 경전의 말씀이 떠올랐고 그것은 경전의 진리를 다시 확증해 주었습니다. 제게는 이런 일이 드문 일이 아닙니다.

“너희는 무엇을 말할까 미리 염려하지 말고 끊임없이 생명의 말씀을 너희 마음에 쌓아 두라. 그리하면 바로 그 시각에 모든 사람에게 할당되는 분량이 너희에게 주어지리라.”4

지식을 쌓아 두는 사람들에게 주는 한 가지 약속도 잇따라 떠올랐습니다.

“누구든지 너희를 받아들이면 거기에 나도 있으리니, 이는 내가 너희 앞서 나아 갈 것임이라. 나는 너희 오른편에도 왼편에도 있을 것이요, 나의 영은 너희 마음속에 있을 것이요, 나의 천사들은 너희를 둘러 있어 너희를 받쳐 주리라.”5

그것은 제게 훌륭한 교훈이었지만 거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저는 청소년 시절에 그림 그리기와 나무 조각을 좀 했습니다. 주로 혼자서 배웠습니다. 제 아이들이 자라는 동안 저는 많은 시간을 들여서 그 아이들에게 제가 인생에 관해 배웠던 것들과 소년 시절에 나무 조각과 그림에 대해 배웠던 것을 가르쳤습니다.

아이들이 성장한 후에는 저는 휴식의 일환으로 나무 조각을 했습니다. 새를 한 마리 조각했는데 많은 시간이 들었습니다. “이것을 조각하는 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죠?”라는 질문을 받으면 저는 언제나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만약 알게 되면 조각을 그만두게 될 겁니다.”

손으로 작업을 하는 동안 저는 창조의 경이로움에 대해 깊이 생각했고 영감이 흘러 넘치곤 했습니다. 저는 나무를 조각하면서 저의 말씀도 조각했습니다.

조각을 하면 저는 편안해집니다. 때때로 스트레스를 받거나 마음이 불편해지면 제 아내는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또 다른 조각을 시작하는 게 좋겠어요.”

노년기에 이른 저의 기억력이 조금만 좋아진다면 그 조각품들을 가리키며 그것이 어느 말씀을 의미하는지 이야기할 수 있을 텐데 하고 생각합니다. 그 고요한 순간에 저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가르침을 통해 수확함

저는 더 이상 그러한 것들을 조각할 수 없습니다. 3초점 안경을 쓰고 어린 시절의 소아마비로 약간 뻣뻣해진 손가락 관절을 가진 저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부름으로 인해 가중되는 압박감은 제가 조각하는 일과 말씀을 준비하는 일 두 가지 모두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조각을 할 수 없지만 우리 아이들은 다릅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그것을 가르쳤습니다.

밭에서 기다리고 서 있던 그 말들의 이미지가 항상 제 마음에 새겨져 있습니다. 저는 제가 고삐를 쟁기 위로 늘어뜨린 채 밭에 서 있는 감독의 말들을 그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림을 그리지 않은 지 9년이나 되었기 때문에 망설여졌습니다. 특별한 재능과 영감을 지닌 두 친구가 제가 감독의 말들을 그리는 것을 도와주겠다고 했으므로 저는 7월에 여행을 끝내자 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두 친구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으며 제가 배운 것들은 저의 그림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나 제 두 아들로부터 더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한 아들은 쟁기질한 그 밭의 사진들을 찍었습니다. 제가 나무에든 캔버스에든 말씀에서든 어떤 것을 묘사할 때 항상 아주 정확하게 해내려고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것은 또 다른 교훈이었습니다. 저는 제 자녀들에게서 그들이 어릴 때 배웠던 것을 다시 얻을 수 있었습니다.

또 다른 아들은 제 그림에 짝이 되도록 감독의 말들을 청동으로 조각하기로 했습니다. 우리는 서로를 도우며 많은 시간을 보람 있게 보냈습니다.

제 아들은 우리 헛간에서 50년 넘게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채로 걸려 있던 한 쌍의 낡은 마구를 꺼내서 먼지를 털어 내고 그것들을 집안으로 들여왔습니다. 그는 한 세트의 마구를 아주 참을성 있는 승마용 말 위에 걸쳤습니다. 그 말은 제 아들이 마구를 알맞은 순서로 배치해 놓고 말에 대한 세부적인 스케치를 하는 동안 조용히 서 있었습니다.

제 아들의 이웃에 사는 분은 옛날 쟁기들을 여러 개 수집해 왔습니다. 그것들 중에는 그 시대에 쓰였던 쟁기가 있었는데 제 아들은 그것도 그렸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들들에게 청소년기에 가르쳐 주었던 것이 결국 우리에게 되돌아왔습니다. 우리의 다른 아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들은 우리가 부모로서 그들이 아주 어렸을 때 그들에게 가르쳐 주었던 것을 계발시켜 왔습니다. 만일 이 세상에서 우리의 날들이 연장된다면 우리는 두 번째 수확—즉 우리의 손자녀들—을 거둘 것이며 또 아마 세 번째 수확도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잠자는 재능을 다시 깨움

저는 또 다른 것도 다시 배웠습니다. 한번은 소년 시절에 들었던 이야기에서 영감을 얻어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것은 윌라드 봉우리를 묘사한 것이었습니다. 저는 나이 드신 분들이 그 봉우리를 제일회장단으로 부르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이 세 개의 거대하고 견고한 봉우리들은 교회의 지도자들을 상징했습니다.

그것은 9년 전이었습니다. 제 아들은 저를 윌라드 봉우리로 데려가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우리는 그 곳에 그늘이 져서 명암이 뚜렷할 때 두 번째로 다시 그 곳에 갔습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저는 사용하지 않고 내버려뒀던 재능을 다시 일깨워야 했습니다. 처음에는 아주 힘들었습니다. 몇 번이고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한 친구는 저에게 이렇게 저를 충동시키는 말을 했습니다. “계속하게! 잠재력은 언제나 충분히 있는 걸세.”

저는 단지 제가 중단하는 것을 제 아내가 허락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제가 중단하지 않았던 것이 기쁩니다. 이제 저는 다시 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되었고 언젠가 또 다른 그림을 그릴 것입니다. 그렇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저는 다시 그림을 그리려고 노력하는 것은 오랫동안 교회에서 저활동 회원이었던 사람이 다시 양의 우리로 돌아오기로 결심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잠들어는 있지만 실제로 잃어버린 것이 아닌 그러한 것들을 다시 느끼기 위해서는 노력의 기간이 필요합니다. 한두 명의 친구가 있다면 도움이 됩니다.

그것은 인생의 평범한 경험에서 얻은 또 다른 배움의 원리입니다.

감독의 쟁기를 끄는 말 그림은 곧 완성될 것입니다. 제 아들의 조각도 주조소에서 청동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덧붙여 말하자면 제 아들의 조각은 제 그림보다 훨씬 훌륭합니다. 그것은 제대로 만들어졌습니다. 그의 젊은 정신과 손가락은 제 것보다 더 잘 움직입니다.

노년기로 접어들면 우리의 나이든 뼈가 쉽게 굽혀지지 않으며 관절도 그렇게 빨리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일단 60대 중반을 지나면 구두끈을 매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마룻바닥이 더 낮아진 듯한 느낌이 듭니다.

이런 교훈이 다시금 생각납니다. “네가 젊었을 때에 하나님 계명 지키기를 배우라.”6

“하나님의 영광은 예지니 다른 말로 하면 빛과 진리니라.”7

“나는 너희에게 명하여 너희 자녀를 빛과 진리로 양육하라 명하였느니라.”8

성신의 거룩한 은사는 우리의 자녀들이 불과 여덟 살일 때 주어집니다.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생각나게 하리라.”9

가르치고생각나게 하리라는 말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어린이를 가르치는 그것 자체로 보상이 됩니다. 여러분은 자녀들이 배우는 것을 통해 얻는 것보다 여러분이 가르치는 것을 통해 더 많이 배운다는 것을 아직 알지 못하십니까?

영적인 기억을 자아냄

세상적인 지식을 얻는 것과 영적인 지식을 얻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학생들은 시험을 치는 날에 그것을 배웁니다. 여러분이 전세에서 배우지 않았던 것을 기억한다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입니다.

세상적인 지식에 있어서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우리는 출생 이전의 기억을 자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이해를 키워나갈 수도 있습니다.

시인 워즈워스가 다음의 시를 썼을 때, 그는 전세에 관해 무언가를 느꼈던 것입니다.

우리의 출생은 한낱 수면이고 망각일 뿐,

우리와 함께 소생하는 인생의 별인 영혼은,

어디엔가 거하던 곳,

먼 곳으로부터 오는 것,

완전한 망각도 아닌,

완전한 벌거숭이도 아닌,

영광의 구름 옷자락을 끌며 우리의 본향인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인가. 10

저는 이 시를 외우고 있지만 이것은 대학 시절 영어 시간에 외웠던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 교훈은 인생의 평범한 사건을 통해서 얻어집니다.

어떤 사람들은 강력한 영적인 경험을 통해 자신의 간증이 확고해지기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간증은 그런 식으로 강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일상에서 느끼는 감동과 고요한 속삭임을 통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우리의 정체성을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표적을 구하고 기이한 사건들을 “지나쳐”11 구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특권에 훨씬 못 미치게 생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전세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았기 때문입니다. 가끔 망각의 장막이 거두어집니다. 그럴 때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또 영원한 계획 속에서 우리가 차지하는 위치에 대한 암시를 얻습니다. 그러한 기억이나 영적인 통찰력을 구하십시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참되다는 간증의 한 가지입니다. 그러한 계시는 우리가 가르칠 때 옵니다.

매리온 지 롬니 회장님(1897~1988)은 “저는 항상 제가 말씀드리는 것을 통해 어떤 것을 배우기 때문에 제가 언제 성신의 영향력 하에서 말씀드리고 있는지를 항상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장로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가르침을 받기 위함이 아니고, 나의 영의 권능으로써 내가 너희 손에 맡긴 것들을 사람의 자녀들에게 가르치기 위하여 보냄을 받았느니라.

“그리고 너희는 높은 곳에서 가르침을 받아야 하느니라. 너희 자신을 성결하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는 내가 말한 대로 줄 수 있도록 권능을 부여 받으리라.”12

선교사들이 개종자들을 많이 얻지 못할 때조차도 그들과 교회에는 영적인 권세가 옵니다. 이는 그들이 사람들을 가르침으로써 배우기 때문입니다.

집사 정원회 회장은 평의회에 참석해서 동료 집사들을 가르쳐야 합니다.13 장로 정원회 회장은 성약에 따라 그의 정원회 회원들을 가르쳐야 합니다.14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그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15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가르침이 어떻게 그 자체로 보상이 되는지를 다음과 같이 여덟 마디로 설명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둑질하지 말라 선포하는 네가 도적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16

기꺼이 배우는 자가 됨

어느 날 저는 예전에 자주 그랬듯이 사과의 편지를 한 통 받았습니다. 그것은 제가 알지 못하는 분이 보낸 것이었습니다. 이 편지에서 그는 이전에 제가 했던 말씀 때문에 오랫동안 저에 대해 얼마나 분개하고 노여워했는지를 이야기했습니다. 그는 용서를 구했습니다.

저는 용서하는 것에 신속합니다. 저는 말씀을 전하고 용서를 베푸는 두 가지 일에서 대리인에 불과합니다.

경전에는 선지자와 사도들의 가르침이 이스라엘 백성들과 니파이 백성들에게 얼마나 “심(한지)”17를 나타내 주는 성구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르침을 거스르고 교사에게 분개하기는 너무나 쉽습니다. 그것은 태초부터 많은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겪었던 일입니다.

팔복 중 하나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쳐 줍니다.

“또한 나로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며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온갖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이는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크므로 너희가 크게 기뻐하고 심히 즐거워할 것임이라. 이는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그들이 이같이 핍박하였음이니라.”18

전형적으로 그러한 사과의 편지에는 “저는 형제님이 왜 저를 그렇게 불편하고 죄책감을 느끼게 만들었는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러한 갈등과 고민이 정리된 후에는 원인과 결과에 대한 통찰력과 영감과 이해력이 찾아 옵니다. 마침내 그들은 복음의 본질을 깨닫고 이해하게 됩니다.

저는 여러 가지 주제 중 한 가지를 언급하겠습니다. 자매님들은 왜 우리가 어머니는 자녀와 함께 집에 머물러 있어야 하는지 그 중요성을 강조하는가를 결국은 이해하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자매님들은 어떠한 봉사도 비이기적인 모성애를 통해서 오는 지고한 순화와 같을 수는 없다는 것을 이해하게 됩니다. 또한 자매님들은 지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순화되지 않는 일이 없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적절한 시기에 주어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들은 자녀를 가르치는 데서 오는 영원한 미덕에 수반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떠한 가르침도 어머니가 자녀를 가르치는 일에 필적할 수는 없으며 또 그보다 영적으로 가치가 있다거나 숭고하지 않습니다. 어머니는 가족을 가르치는 일에 몰두해야 하기 때문에 학문적인 경전 지식에 부족함을 느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에 못지않은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그랜트 뱅커터 부장은 브라질에 있는 그의 선교부를 여행하고 있던 조셉 필딩 스미스 회장님과 교리에 관해서 대화를 하고 있었습니다. 뱅커터 자매님은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미스 회장님, 저는 자녀들을 키우느라 남편처럼 경전에 정통하게 될 시간이 없었답니다. 제가 남편과 함께 해의 왕국에 가게 될까요?”

스미스 회장님은 잠시 동안 진지하게 생각한 후 “자매님이 남편에게 파이를 구워주신다면 가게 될 겁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남자는 아내가 자녀를 가르치면서 영적으로 순화되는 만큼 자신이 순화되기가 무척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그가 조금이라도 복음을 이해한다면 아내 없이는 승영할 수 없음을 압니다.19 남자의 최상의 바람은 자녀를 기르는 일에서 세심하고 신뢰할 수 있는 협력자가 되는 것입니다.

교사들에 대한 축복

이제 다음 약속을 생각해 보십시오.

“너희는 부지런히 가르치라. 그리하면 나의 은혜가 너희(교사)와 함께 하리라. 이는 너희(교사, 어머니, 아버지)가 이론에 있어서, 원리에 있어서, 교리에 있어서, 복음의 법에 있어서, 너희가 이해할 필요가 있는 하나님의 왕국에 관계되는 모든 것에 있어서 더욱 온전히 가르침을 받게 하려 함이요,”20

이 약속은 학생들에게보다 교사들에게 주는 것임을 주목하십시오.

“부지런히 가르치라. 그리하면 나의 은혜가 너희 (자녀나 초등회, 주일학교, 청남 청녀, 신권회, 세미나리, 상호부조회를 가르치는 교사)에게 미치리(라).”그러면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있는 것, 전에 있었던 일이나 지금 있는 일이나 머지않아 반드시 있게 될 일, 국내에 있는 일이나 외국에 있는 일, 열국의 전쟁과 혼란, 그리고 땅 위에 있는 심판과 또한 나라들과 왕국들에 관한 지식에 있어서 더욱 온전히 가르침을 받게 하려 함이요-

“내가 (가르치는) 너희를 부른 그 부름과 내가 너희에게 맡긴 그 사명을 영화롭게 하도록 내가 또다시 너희를 보낼 때에 너희가 모든 일에 준비가 되어 있게 하려는 것이니라.”21

바울은 젊은 디모데에게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를 것이라)”22고 예언했습니다. 그는 또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할 것이라)”23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안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안전은 곧 자녀들을 가르치는 데 있는 것입니다.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24

바울은 디모데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했습니다.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25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바로 그분의 교회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모범이시며 구속주이십니다. 우리는 “그(와) … 같이”26 되도록 명하심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어린이들의 교사이셨습니다. 그분은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에게 “어린 아이들을 용납하고 내게 오는 것을 금하지 말라 천국이 이런 사람의 것이니라”27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니파이인들 가운데서 베푸신 구주의 성역의 기사에서 우리는 어쩌면 다른 어떤 곳에서보다 더 그분의 영혼을 깊이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또 이렇게 되었나니 예수께서 그들의 어린아이들을 데려오라 명하시더라.

“이에 그들이 그들의 어린아이들을 데려와 그를 둘러 땅에 내려놓는지라, 예수께서는 그 한가운데 서셨고, 무리는 그들을 모두 데려올 때까지 길을 비켜 주었더라. …

“… [예수께서] 우시니, 무리가 이를 증거하니라. 또 그들의 어린아이들을 하나씩 안으시고, 그들을 축복하시며, 그들을 위하여 아버지께 기도하시더라.

“그리고 이렇게 하시고 나서 다시 우시더라.

“그리고는 무리에게 말씀하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의 어린 자들을 보라 하시더라.

“이에 그들이 주목하여 보려 할 새 그 눈을 들어 하늘을 향하더니, 하늘들이 열린 것을 보고, 또 천사들이 마치 불 가운데 있는 것처럼 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보매, 저희가 내려와 그 어린 자들을 둘러싸니, 그들이 불에 둘러싸였으며, 천사들이 그들에게 성역을 베풀더라.

“이에 무리가 보고 듣고 증거하였으니, 그들이 자기의 증거가 참인 줄 아는 것은 그들 각 사람이 모두 친히 보고 들었음이라.”28

저는 그 기록이 참됨을 압니다. 저는 그분을 증거하며 그분의 이름으로 자녀를 가르치는 여러분 모두를 축복합니다.